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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28

일상의 아름다움 | 영화 American Beauty

by kutique_love 2019.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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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아무렇지도 않은 부분에서 문득 눈물이 날 때가 있지 않은가? 영화를 보다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지극히 평범한 부분에서 눈물이 터진다. 그런 장면을 마주칠 때가 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 때. 대게는 과거의 경험이나 결핍 혹은 일상에서 느껴보았던 감정이 떠올라서이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비닐봉투가 바람에 휘날리는 장면이 그러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아름답다고 느꼈고 코 밑이 시큰거렸다.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항상 일상을 촬영하는 리키가 자신이 좋아하는 제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그날은 마치 첫눈이 내릴 듯했어. 

공중엔 자력이 넘실댔고, 춤소리가 들렸어. 

저 봉지는 나와 춤을 추고 있었어. 

같이 놀자고 떼쓰는 애처럼. 무려 15분 동안이나. 

그날 난 체험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신비롭도록 자비로운 힘을. 

내게 두려울게 없다는 걸 깨우쳐 줬지. 

영원히.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해. 이 세상엔 말야. 

그걸 느끼면 참을 수가 없어. 나의 가슴이 움츠려들려고 하지.

(영화. American Beauty )

 

비닐봉투가 굴러가는게 뭐?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라서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별볼일 없는 일인데 뭐가 느껴져? 비닐봉투 자체를 보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리키의 생각에 공감해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평범한데 나한테만큼은 특별했던 순간의 기억. 남들에겐 납득시킬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폭신한 고양이 발의 꼬신내, 어릴적 기어오르던 나무의 촉감, 잠이 오는 엄마의 무릎베개, 낡고 때탄 이불, 더러운 지우개, 책장 뒷편에 숨겨둔 일기 등 가치를 증명할 수 없지만 특별한 기억을 가진 순간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강렬한 장면들이 이 영화를 이해하게 도와줬다.

 

아침마다 샤워부스에서 자위하는게 유일한 낙이자 딸의 친구를 성적으로 바라보는 죽고 싶은 중년 가장. 가정 밖에서 자존감을 찾는 바람난 아내. 아빠를 죽여달라하는 고스트족 딸. 영화는 망가진 가족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제목이 아메리칸 뷰티인데 전혀 환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내용이다. 가족이 점점 파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려 묻게 된다. 우리는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

 

이십 때 초반에는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막연히 좋아서 꾸준히 다시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답을 비닐봉지가 휘날리는 장면에서 찾았다. 아름다움은 내면의 시선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미적 기준이 나뉘고 감동하는 감각이 달라진다. 아주 평범한 장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고 아름다워야할것 같은 순간이 비극적인 장면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이 헛되지 않고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   

 

ost곡 ‘because’중에 ‘하늘이 파랗기 때문에 나를 울게 한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우리는 너무 경쾌하거나 비극적인 엔딩을 마주치면 굉장히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해준 것이 기억난다.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나를 찜찜하게 만들어서 몇년 뒤 결국 글까지 쓰게 만들었다. 주제곡조차 뜻이 ‘왜냐하면’이다. 결말의 대사 또한 이런 의도가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해선 각자 생각을 이어가라.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눈을 떠라. 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치니까.

 

죽음에 직면하면 살아왔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일순간에 끝나는 장면들이 아니다. 

영원의 시간처럼 오랫동안 눈 앞에 머문다. 

내겐 이런 것들이 스쳐간다. 

보이스카웃 때 잔디에 누워 바라보았던 별똥별, 집 앞 도로에 늘어선 노란 빛깔의 단풍잎, 메마른 종이결 같던 할머니의 손과 살결, 사촌 토니의 신형 화이어버드를 처음 구경했던 순간........ 

그리고 제인, 나의 공주. 그리고 캐롤린. 

 

살다보면 화나는 일도 많지만, 분노를 품어선 안된다. 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치니까. 

드디어 그 아름다움에 눈뜨는 순간,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터질 듯이 부푼 풍선처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면, 희열이 몸 안에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생긴다. 소박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대해. 

무슨 뜻인지 좀 어려운가요? 하지만 걱정마세요. 

‘언젠가는 알게 될테니까.’

(영화 American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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